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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ing/보고 남김

EBS 통찰 37회 - 자크 라캉의 욕망

by 그냥그렇듯이 2018.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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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 욕망은 끝이없다.

삶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끝없는 나락에 빠뜨리기도 하는 욕망.

자크 라캉이 말하는 욕망의 개념과 본질은 무엇인가?

 자크 라캉과 불교의 만남!

<출연자>

김석 -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부 교수
이도흠 -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본문>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하려 한다. 인간의 욕망은 결핍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욕망은 보닞ㄹ적으로 충족될 수 없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욕망이 요구한 것과 충족된 것 사이의 간극이 마음속에 쌓여서 만들어지는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석) 라캉은 욕망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욕망때문에 문명이 만들어졌다고 이야기 한다. 현대인의 욕망 대부분이 자신의 자유 의지가 아닌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것이다. 자크 라캉의 욕망은 무엇일까?

여러분들은 욕망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시나요? 아마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으실 겁니다. 영화 Seven에서 나온 탐욕과 같은 것이 떠오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욕망의 긍정성과 부정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짧은 이야기를 들어보자. 

까마귀와 독수리의 이야기
까마귀가 들판에서 새끼 양을 잡아 간 독수리를 보았다. 까마귀는 독수리를 따라하다 봉변을 당했다.
어리석은 까마귀 - 현대 소비사회에서도 발견되는 모습
여기서 중요한 것은 까마귀냐 독수리냐가 아니라 "소비 사회를 사는 현대인은 타인의 욕망을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성향이 있다."라는 것이다.

2010년에 개봉한 블랙 스완

욕망의 키워드로 본 영화 [블랙 스완].
'완전한 백조'역을 연기하겠다는 니나의 욕망. 니나는 백조의 연기를 완벽히 소화하지만, 흑조의 역할을 잘 소화해내지 못한다. 이 영화에는 리나의 어머니와 감독의 욕망이 가득 차있다. 과연 니나의 욕망이 자유의지에 의해 존재할까?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 자크 라캉

자르 라캉 (Jacques Lacan, 1901~1981)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신분석학자이자 사상가이다. 언어학, 철학을 도입해 구조주의 관점에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재해석하면서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을 탐구하였다. 그는 인간의 다양한 욕망, 무의식이 말(언어)를 통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무의식은 언어와 같이 구조화되어있다." - 자크 라캉

욕망은 부정적인 의미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갈애(渴愛)가 모든 번뇌의 원인이라고 이야기한다. 불교의 갈애(渴愛)는 범부의 세 가지 번뇌와 다섯 가지 욕망에 대한 집착을 뜻한다. 기독교에서는 욕심을 단죄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나혹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지만 자크 라캉은 욕망이 인간 존재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욕망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진 못한다. 최초의 욕망 > 더 많은 욕망 지향으로 향하고 욕망의 충족 > 또 다른 욕망 지향을 낳아 욕망의 무한한 순환이 되게된다. 결국 욕망은 자신의 빈 존재를 채우려는 발버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라캉의 욕망과 세 영역>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실행하는 존재가 주체이며 주체가 대상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로 나뉜다.

(1) 상상계 (Imaginary) 거울 단계에서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가상 이미지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상상계에는 심리적인 것이 반영되어 내가 보고, 듣고 싶어 하는 것, 즐거워하는 것 중심으로 현실을 바라본다.

라캉의 상상계는 자아를 욕망의 대상과 동일시한다. 프로이트가 사용한 나르시시즘의 개념을 이야기한다. 생후 6~18개월 사이의 아이들은 사물의 구분이나 자기 감각에 대한 조절이 어렵다.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의 몸이 각각 따로 구성된 것처럼 여긴다. 그래서 아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처음에는 자신이라고 여기지 않다가 차츰 이 이미지를 자신과 동일시 하는데 이 단계에서 자아가 형성된다. 거울 단계(Mirror Stage)

그렇다면, 상상계가 왜 중요할까? 우선 자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며, 그 다음으로 착각과 기만의 영역이라는 점 때문이다. 거울단계와 상상계의 자의성은 라캉이 의식의 명증성을 강조하는 주체 철학을 비판하는 핵심 논거가 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데카르트

"나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하고 따라서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 자크 자캉

상상계의 은유 > 거울. 6개월부터 18개월 사이, 언어의 세계인 상징계로 들어서기 전 자신과 대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유아는 거울에 비친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한다. 그리고 이때, 최초의 자아 분열이 시작된다. 거울에 비친 완벽한 모습에 대비해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의 몸을 깨닫게 된다. 불완전한 몸과 이상적 몸 사이의 괴리가 상상계의 특징이다. 결국 '나'와 이상화된 이미지의 간극이 불안감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으로 관계를 맺는 자아는 착각과 오류를 발생시킨다.

허위 합치성 편파(False-consensus bias): 실제보다 많은 사람이 자기 의견에 동의할 것으로 오해하는 것을 말함.

허위 독특성 편파(False uniqueness bias): 별 근거 없이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더 훌륭하고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이 외에도 선입견, 고정관념, 잘못된 인간관계 설정 등 자아는 수많은 오류와 착각을 반복한다. 그리고 라캉은 이 모든 것을 상상계로 설명한다. 상상계는 우리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경험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영역이다. 상상계에 오래 머물면 주관적인 착각과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다. 

(2) 상징계: 상상계(자신의 생각을 믿는 세계)와 다르게 상징계는 이미 구성된 세계이다. 단순하게는 언어 자체를 말하며 언어 구조에 기초해 구성된 모든 상징, 문화, 규칙의 영역. 갓난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을 생각하면 쉽다. 우리는 상상계 다음에 상징계를 겪게된다. 상징계는 주체가 태어나는 과정이다. 라캉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주체가 상징계에 들어가면서 구성되는 과정으로 재해석 하였다.

'어머니와 하나'라고 상상하는 아이

상징계 1단계 - 어머니의 욕망과 동일화를 이루는 영역

상징계 2단계 - 아버지의 등장으로 상상과 자아를 분리하는 단계. 자신을 욕망의 주체로 만들어간다.

상징계 3단계 아버지의 법, 언어로 대표되는 사회적 질서나 규칙 타자와의 관계들을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을 일치시킨다.

"욕망은 타자의 언어이다." - 자크 라캉

인정 욕망 - 남의 인정을 구하는 욕망으로 라캉은 인정 욕망이 인간이 갖는 욕망의본질이라고 명명

상징계는 '나'와 '주체'의 관계와 위치, 역학을 부여해주는 질서이다. 언어 자체가 아닌 언어적 구조가 상징계의 본성이다. 자아는 자기중심적이나 주체는 타자의 규칙을 수용하며 보다 객관적이다. 내가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지만 사실 언어가 나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다. 나는 정해진 언어 규칙을 통해 타자와 소통하며, 내 맘대로 말의 규칙을 바꾸면 타자와 소통이 불가능 해진다. 이 점에서 언어의 우월성과 법적인 가치가 나타난다. 언어의 사용은 선택이 아닌 강요이다. 언어의 세계에서 벗어나 우리는 삶 자체를 지속할 수 없다. 주체가 되면서 욕망이 시작되는 것이지 주체 자체가 존재하지 못한다면 욕망이 있을 수 없다. 

상징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정'이다. 존재와 주체의 욕망을 인정해주는 사람은 바로 타자이다.

존재: 타자에 의해 존재의 위치와 의미가 부여될 때

의미: 존재의 모든 것을 대변하지 않음

나의 이름이 홍길동이라고 해서, 홍길동이라는 이름이 나의 모든 것을 나타내지 못한다. 언어는 주체로서 우리를 구성하고 표현하고 욕망을 지속시키거나 소외시키는 도구이다. 상징계는 유아론적 소외에서 벗어나지만 언어에 의한 이차 소외를 발생시킨다. 

(3) 실제계: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언어를 통한 재현이 불가능한 실재계. 실재계(Real)은 가장 난해한 영역이다. 라캉은 실재계가 언어 행위와 언어 체계 밖에 머물러 있는 일종의 잔여 영역이라고 이야기 했다. 상상계와 상징계의 경계선이면서 둘 다 포괄하는 영역이다.

실재계에서의 무(無)는 언어가 존재를 표현할 때 언어에서 벗어나는 상징계의 영역이다. 실재계는 상징계에 의해 배제되지만 계속 상징계를 이어주는 구성물이다. 욕망을 지속시키는 원인이 바로 실재계에 있다. 

<아담과 하와(이브)> - 터치아노
아담과 하와가 따먹는 선악과는 '죄'와 '죽음'을 생각한다.

<파리스의 심판> 루카스 크라나흐
파리스의 심판 때문에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파리스의 심판에서의 사과는 '불화'를 상징한다.

'전체'를 다 담아낼 수 없는 원초적인 차원인 실재계. 우리는 많은 '사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뉴턴의 사과, 파리스의 사과를 모두 포함하는 사과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실재계는 상징화를 요구하는 근거를 만들어낸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영원한 도가 아니다. - 노자 [도덕경] 1장

'도'를 '도'라고 명명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도'가 아니다. 라캉은 실재계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욕망의 반복은 욕망의 불가능성 때문인데, 바로 이 불가능이라는 것이 실재계의 속성이다. 

"실재 그것은 불가능이다." - 자크 라캉

또한, 실재계는 잃어버린 대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잃어버린 대상은 무엇일까? 언어의 세계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가 가진 존재의 부분을 기호적, 언어적으로 표현된다. 이 때 기호적/언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잃어버린 대상이 실재계에 속하게 된다. 결국,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가 삶의 근본적인 영역이 되면서 욕망이 발생되는 조건이 된다. 생물학적인 욕망은 본능에 더 가까운 것이고 인간의 본성이 되기는 어렵다. 

욕구(Needs): 무엇을 얻고자 하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 바람을 말한다.
욕구는 필요가 충족되면 바로 해소된다.

요구(Demand): 어떠한 것을 필요하다고 바라거나 요청하는 것이다.
생물학적인 욕구 단계를 넘어선 것이다. 욕구가 언어적으로 표현된 것이 요구이다.

욕망(Desire): 부족한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간절하게 바라는 것
욕구와 요구 사이의 불일치에서 욕망이 비롯된다. 인간은 이러한 욕망을 근본적으로 가지고 태어났다.

욕구(Needs)라는 것은 우리가 생물학적 존재이기 때문에 갖게된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픈 것. 욕구는 대상에 의존적이고 자연적인게 특성이다. 욕구는 욕망의 출발점이지만 욕망이 그 자체가 아니다. 욕구는 제한적이고 쉽게 만족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욕구를 문화의 형태로 언어의 형태로 나타낼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본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의도움을 받아야 한다.

배고픈 아이 > 배를 채워주는 엄마

아이는 배가 고프면 자신이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인정받아야한다. 이 때 아이가 자신의 배고픔을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것, 요구 단계를 거치게 된다. 욕구는 자연적인 것이나 요구는 타자를 전제로 한다. 자신의 욕구가 아무리 급하다고 하더라도 타자에게 전달하지 못하면 소요잉 없다. 인간은 요구가 커질수록 틈을 느끼게 된다. 대상에 대한 요구가 반복되면서 무제약적 사랑에 대한 요구로 변화하게 된다. 욕구와 다르게 제약이 없는 무제약적 요구가 생겨난다. 그리고 이러한 무제약적 요구는 충족될 수 없다. 왜냐면, 욕구의 결여를 무제한으로 채워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요구가 지속되고 충족될수록 결핍이 생겨난다. 욕구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무제약적 사랑이 된다. 바로 이곳에서 요구와 욕구의 불일치가 발생하게 된다. 요구와 욕구의 불일치는 인간이 언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욕구의 충족 후 점점 더 요구는 커지게 되는데 이 때 불일치와 결핍이 스며들고 그 틈에 욕망이 등장하게 된다. 라캉의 욕망(Desire): 항상 자신의 대상에서 빗나가며, 결여의 차원에서 작동 욕망의 완전한 충족의 '구조적(structural) 불가능성'을 강조한다.

"욕망은 충족을 위한 식욕도 아니고 사랑을 위한 요구도 아니며 요구로부터 욕구를 뺀 차이인 것이다." - 자크 라캉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 자크 라캉

타자의 욕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주체의 욕망은 사라진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때 결핍과 비존재성을 느끼는 상징계. 욕망은 타자의 욕망에 대한 환상이다. 결국 욕망이 지향하는 것은 존재자체이지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다른 대상이 아니다. 하자만 현대 소비 사회는 존재가 아닌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욕망으로 변질시킨다. 그것은 욕망은 내가 아니라 타자의 욕망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이의 욕구 > 요구 > 어머니의 인정 > 충족

타자로부터의 인정 > 타자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믿는 것 => 소외의 전형

타자의 욕망을 좇으면 좇을 수록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감이 발생하게 된다. 욕망에는 절대성이 없다. 타자의 욕망이 나의 욕망이 될 수도 없다. 그리고 타자의 욕망이 실현되는 순간 자신의 욕망은 소멸되게 될 것이다. 결국 타자의 욕망은 욕망의 원인이기도 하면서 우리 자신의 욕망을 소외시키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은 진리의 명제로 나아가는데 바로 욕망의 윤리이다. 욕망의 윤리는 욕망이 존재 회복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이야기한다.

현대 소비 사회는 거짓 욕망을 조장한다. 독일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현대사회를 소비사회로 정의했으며, 인간의 여러 악덕은 사회 조건을 개혁함으로써 감소시킬 수 있다고 보고 인본주의적, 공동체적 사회주의 실현을 주장했다. 명품을 사고, 돈이 많다고 그래서 그것이 나의 존재를 그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물신주의를 조장하면서 이러한 사치가 나의 본 모습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타인의 인정에 집착하다 보면 결국 타인의 욕망에 휘둘리게 된다. 라캉은 '햄릿'을 타인의 욕망에 휘둘리는 현대인으로 재해석했다. 지나친 타자의 욕망은 인간을 속박하며 불안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결국 욕망은 존재의 회복에 대한 열정이다. 욕망 본질을 제대로 이해해 존재의 의미를 되찾자.

Q - 순수욕망과 타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A - 욕망에서 중요한 특성은 인정이다. 그러나 인정이 욕망의 본질은 아니다. 인정의 욕망이 커짐에 따라 존재의 소외도 커질 것이다. 이 때, 라캉이 제시한 대안은 순수 욕망이다. 임마누엘 칸트의 저서인 [순수이성비판]에서 '순수'란 어떠한 감각적, 경험적 요소도 포함하지 않고서 그 자신에서 존재하는 자립적, 자발적 성질을 말한다. 사회와 언어와 타자가 내 존재의 전체를 대변하지 않지만 사회를 버리고 존재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Q - 타자의 욕망을 통해 지향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A -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심리가 숨겨져 있는 욕망의 진짜 본성이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소외되는 부분을 찾아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의 회복 시작점이 되는 존재의 회복을 기억하자. 개개인의 욕망에 대해 존중하자.

코나투스 (conatus): 자기 보존의 충동. 스피노자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사물에는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 힘을 '코나투스(conatus)'라고 부른다고 명명함.

자크라캉(인문사회과학총서),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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