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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ing/읽고 남김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 박찬국 지음

by 그냥그렇듯이 2017.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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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1889.09.26~1976.05.26 메르키르히 출생>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의 실존철학자이다. 주요 저서로는 <존재와시간> <칸트와형이상학의 문제>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휴머니즘에 관하여> <숲속의 길> <니체> 등이 있다. 흔히 실존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정작 하이데거 자신은 그러한 칭호를 거부하였다. 1923년 마르부르크 대학, 1928년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를 지냈다. 독일의 히틀러 집권시기에는 나치 독일을 공공연히 지지하는 발언을 자주 해 한나 아렌트 등과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다.[1] 그러나 나치 독일 패전후 독일 비(非)나치스화 청문회에서 그의 정부였던 유태인 한나 아렌트의 증언등으로 처벌을 피했고 이후 5년 동안 학문 활동을 금지당했다.

<존재철학>

초기시절에는 하인리히 리케르트의 가치 철학에 영향을 받기도 하였으나, 일반적으로 그의 철학은 《존재와 시간》을 중심으로 하는 전기 철학과 1930년~35년 사이의 소위 전회 이후의 후기 철학으로 나뉜다. 그의 대표작인 《존재와 시간》(Being and time)은 후설의 현상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 딜타이의 생의 철학 등의 영향하에 독자적인 철학을 개척하여 현존재의 존재의미를 탐구하는 실존론적 철학을 수립하였다. 하이데거의 전기 철학은 방법론적으로는 해석학적 현상학이며 그 대상으로 보자면 현존재, 즉 인간실존에 대한 존재론이다. 한편 현존재로부터 존재 자체로 핵심적 주제가 옮겨간 후기 철학은 역사적으로 존재 자체가 인간 현존재에게 어떻게 스스로를 현시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그에 따르면 플라톤 이래의 역사는 존재망각으로 점철되었으며 특히 오늘날과 같은 기술시대는 존재망각이 극단에 이른 시기라고 한다. 하이데거는 서양 철학이 플라톤 이후로 "어떠하다(성질)"라는 뜻을 "존재"라는 개념을 써서 접근하려고 했지,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즉, 존재에 대한 모든 연구가 특정한 성질에만 국한되어있고, 존재 자체를 어떤 성질이 있는 형질로 취급했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이미 상정하는 전제"를 분석하는 것이 어떤 대상을 탐구하는 데 우선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철학자와 과학자가 더 기본적이고 이론에 앞서는 존재를 무시했기때문에 그들의 이론을 보편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잘못 되었으며, 우리가 존재와 인간 존재를 그릇되게 인정하였다. 이러한 뿌리깊은 몰이해를 피하기 위하여, 하이데거는 철학의 역사를 하나 하나 되짚어 보면서 철학적인 질문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해야 한다고 믿었다. 후기의 주요 저작으로는 《철학에의 기여》, 《기술에 대한 논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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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는 실존철학의 대명사로 알려져있다. 그가 던지는 '존재'에 대한 고찰은 기술문명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현시대에 강한 울림을 떨친다. 날이갈수록 발전하는 AI기술은 이제 '인간'이 설자리를 점점 잠식하고있고 이제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과연 무엇인지 다시금 재정의하고 성찰할 때가 왔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다. 나 또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자 기계공학을 전공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전공수업 중 창밖으로 햇살이 내리쬐는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왜 이토록 기술(공학)은 발전하였는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때이다.

그 당시 나는 로마역사에 빼곡히 들어찬 찬란한 유산들을 바라보는 로마인들을 생각해보았다. 주변국들보다 강한 군대&전술, 법치를 세운 강력한 의회와 법정, 그리고 웅장한 건축물과 가지런한 도로를 바라보는 로마시민들은 자신들이 세운 문명의 우월함이 주는 혜택을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도대체 무슨 연유로 그 당시의 기술을 초월하는 더 향상되노 기술들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인가? 이는 첨단을 달리던 불완전한 기술에 불만점을 가지고 항상 무언가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가졌기 때문일까? 

오늘 애플이 새로운 아이폰의 판매저조로 현금유동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애널리스트 의견을 담은 기사를 읽었다. 난 4년전에 산 휴대폰을 아직도 쓰고있다. 사용감에 큰 불편함이 없고, 중요한 정보가 많이 있으며, 고장을 스스로 수리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휴대폰을 살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시장은 계속해서 끊임없는 상품을 쏟아내며 '소비'를 요구하는 것일까? 이는 결국 하이데거가 말하는 현대사회가 기술문명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노예가 되어간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개선의 의지를 갖는다는 것은 결국 개선을 통한 자본적 이익이 관련되어 있다.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계산적 사유가 시적 사유를 압도해버렸기 때문에 모든 것은 치밀한 계산에 의해 돌아간다. 모든 존재는 존재 자체로 여겨지지 않으며, 계산기를 두들겨 +가 나올때만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시(poetry)'를 통해 현대사회가 '존재'를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랬는데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어떠한 변화가 나타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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