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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ing/보고 남김

EBS 통찰 03: 동굴과 열정 그리고 자기 성찰 (1)

by 그냥그렇듯이 2016.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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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

배철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

신수진 (연세대학교 인지과학 연구소 연구 교수)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깊은 생각과 통찰을 통해 새로운 발전을 이뤄냈다. 배철현 교수는 진정한 자아 성찰을 통해 자신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당신은 자신만의 동굴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통찰 (洞察)의 한자어의 ‘동’ 자는 동네: 우물을 공유한 공동체를 의미하고 또한 동굴을 의미하는 동자와 같다. 이는 동굴처럼 그윽하고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발견한다는 뜻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배교수는 2014년에 개봉한 ‘버드맨’을 언급하며 퇴물이 된 연극배우가 새로운 재기를 노리는 극 중 설정의 하나인 연극 배우의 분장실에 걸려있는 격언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다.”를 이야기한다. 

이는 ‘내가 누구인가?’라는 인간의 성찰은 어렵고 쓸쓸하고 위기의 상황에서 자신을 되돌아 볼 때, 통찰이 발휘됨을 이야기한다. 때문에 통찰은 외롭고 쓰릈ㄹ한 공간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여정을 떠날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통찰을 상징하는 최고의 장소는 바로 동굴이라고 전달한다. 

배교수는 국내 유일의 사진 심리학자 신수진 교수와 함께 인간의 자기 성찰과 통찰에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3만 4천년여전의 크로마뇽인들이 남긴 동굴 벽화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일깨우려는 어떠한 요소가 있지 않을까?

배교수의 이야기:

동굴하면 생각나는 인물은 바로 ‘단군 신화’이다. 단군은 곰상태에서 동굴에 있다가 사람으로 변화하였다. 동굴은 사람을 한 층 더 발단시키는 어떠한 매개체가 되었다. 원효대사의 경험도 그러하다. 동굴이라는 공간은 자신을 재발견하고 새롭게 출발시킬 수 있는 상징성을 띄고있다. 배교수는 배움이란 자신이 알고있는 것을 강화하며 적자생존의 경쟁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지극히 작은 시간과 공간에서 축적된 편견을 없애는 과정이며 무아의 경지로 들어가는 것 엑스타시(Ex-stasis)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Ex-stasis는 내가 소중히 생각한 상태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류가 먹이를 찾으며 돌아다니다가 아주 쓸쓸한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 것인데 이곳이 바로 동굴이다. 이 동굴에 들어가야지만 자신이 얻을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이는 ‘passion’이다. 열정이라 함은 내가 오감으로 느끼는 것을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라고 생각을 많이 하지만, 사실 Passion이라는 단어는 그런 것을 뜻함과 거리가 있다. Passion은 Pathein이라는 그리스어에 기틀을 두고 있다. 그리고 Pathein이라는 단어는 괴롭다, 고통스럽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로 Passion of the Christ는 = Suffering of the Christ이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는 이 Passion이라는 단어를 ‘Passion은 어렵고 익숙하지 않고 괴로운 것을 자신의 본질로 수용하려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있는 일상에서 벗어나 생소한 장소를 찾아간 뒤 그 곳에서 내 안에 숨겨진 위대한 것을 발견하는 여정을 바로 Passion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Passion이 인간이 스스로를 동물과 다른 존재로 만들게 된 것이다. 

Passion이 통찰과 연결되는 것. 통찰은 가만히 있다가 어떠한 생각을 통해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생소한 공간에서 지속적인 생각을 통해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몸과 생각을 지배하는 본인의 습관이 나오는 것을 ‘아우라’ 라고 하며 이를 ‘카리스마’라고 한다. 그리고 ‘카리스마’라는 것은 평상시에 이러한 수련을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과 같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 개인, 집단, 혹은 국가가 카리스마가 필요한데, 그 핵심에 통찰이 있으며 자신에게 집중하는 Passion을 통해 통찰을 이뤄낼 수 있다.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의 천장에 그려져 있는 벽화가 있다. 1871년에 이 곳을 다스리던 사웃푸나(?) 라는 영주가 있었다. 이 영주는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다. 그리고 이 벽화는 파블로 피카소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파블로 피카소는 이 동굴을 발견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After Altamira, all is decadence.” 알타미라 이후에는 모두 쇠퇴했다.

피카소는 이 벽화를 감상한 이후 석판화인 ‘황소 연작 (The Bull)’을 통해서 황소가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하는 과정을 나타낸다.

배교수의 질문 “어떻게 원시인들이 저런 그림을 그렸을까?” 이 그림을 왜 지하 50m의 동굴에서 그렸을까? 

*프랑스 라스코 동굴에도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와 비슷한 구석기 후기의 석회암 동굴 유적이 있다. 1만 5천여년전에 그려진 사슴 그림은 어찌 그리도 단순하면서 강력한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1994년 12월 18일, 장-마리 쇼베를 포함한 3명의 동굴 탐험가가 프랑스 남부의 아르뒈시의 협곡에서 쇼베 동굴을 발견했다. 이들은 그 동굴에는 그림이 있었는데 기원전 3만 4천~3만 5천년전에 그려진걸로 판별되었다. 

여기에서 배교수가 가장 큰 영감을 받은 그림은 바로 말들이 뛰어가는 그림이였다. 3만 4천여년 전에 빙하기에 맘모스가 있었던 상태에서 자신이 지하 몇 십 m를 내려와서 왜 저런 그림을 그렸을까? 이 말들의 그림은 Proto-cinema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힘차게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한 최초의 영화)적인 엄청난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 말그림에 대해서 신교수는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남긴다. 

왜 동굴에 까지 기어들어가서 저런 그림을 남겼을까? 그 때, 신교수는 요즘 미국에서 유행하는 Men’s cave라는 표현에서 동굴은 새로운 열정을 일깨워줄 나만의 공간을 뜻한다고 봤다. 동굴이 가진 환경적 특징은 바로 자연광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이며, 이는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며 햇빛과 빛이 차단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 동굴에서 그림을 그렸을까? => 자기가 보고 목격한 것을 의미있게 만들려는 기억의 의미와 또한, 아픙로 일어날 일에 대한 상상과 기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코멘트에 대해 배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인간은 기억의 조각으로 이뤄진 것이다. 기억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아모스 오즈 라는 유대인 작가가 ‘유대인은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에 답변한 ‘유대인은 혈연이 아니라 스토리 라인이다.’를 인용한다. 유대인이라는 것은 기억과 역사다. 때문에 기억의 의미라는 측면는 동의한다. 하지만 기원과 상상의 의미는 동의하지 않는다.  보통 사냥를 위한 축복을 위해서 벽화를 그렸다고 판단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 동굴에서 생활한 크로마뇽인들의 신체를 다 조사해봤더니, 이 그림에 나타난 동물들을 섭취하지 않은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신교수는 다음의 이야기를 이야기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카메라 옵스큐라 현상과 유사할 것이다. 카메라 옵스큐라: 사진기의 기원이자 ‘카메라의 어원. 어두운 방의 지붕이나 벽 등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 반대쪽의 하얀 벽이나 막에 옥외의 실상을 거꾸로 찍어내는 장치. 

동굴은 상상과 휴식을 위한 공간이였을 것이다. 마치 현대인들이 영화를 보는 행위는 동굴 벽화와 같은 이치이다. 동굴 속에서 벽화를 보는 것이, 우리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시청하는 것과 유사한 점이 많다.

배교수는 신교수의 이 주장에 대해서 프랑스의 저명한 선사학자인 루이 윌리엄스의 주장을 인용한다. 루이 윌리엄스는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가 샤먼 의식과 관련되었다고 주장하며 벽화의 표현이나 주제가 환각 상태의 이미지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배교수는 고대인들의 벽화를 이야기하며 동물과 ‘나’는 하나라는 유동성 (fluidity)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쇼베 동굴의 가장 안쪽에 있는 벽화는 아주 충격적이다. 하체는 여성의 음부이고 상체는 황소가 그려져있다. 그 옆에는 곰이 있다. 

배교수는 이것을 보고 후대의 파블로 피카소의 ‘미노 토로스’와 ‘미노스의 미노’에서 인간과 동물이 하나가 되는 것이 연상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빌렌도로프의 비너스’도 언급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벽화를 그 당시의 샤먼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독일의 울름에서 발견된 사자 인간 이라는 조각상이 있다. 약 3만 4천년전의 조각상이다. 얼굴은 사자인데 몸은 인간인 조각상이다. 이 조각상은 당시 입구의 빛을 향해 세워져있었다. 이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 수 있는 투과성(permeability)을 표현한 것이다. 네안데르탈들은 이러한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오직 호모 사피엔스들만이 남겼다. 쇼베 동굴에는 하나의 제단이 있었는데 이 제단 위에는 곰의 두개골이 있었다고 했다. 이는 그 당시의 샤머니즘에 입각한 종교 의식을 행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 곰의 머리도 사자 조각과 마찬가지로 입구를 향해 있었으며 제단의 근처에는 불이 피워진 흔적도 남아있었다. 

쇼베 동굴은 인간의 종교성, 창의성, 예술성에 더불어 음악이 발견된 것이다. 독수리 뼈로 5음계의 피리를 제작한 것이 그 증거이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국가’에서 3가지 동굴의 종류를 이야기했으며 가장 유명한 것은 <동굴의 비유>이다. 이는 플라톤의 ‘국가’ 제 7권에서 서술되었다. 이 동굴속에는 족쇄로 인해서 동굴의 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벽에는 그림자만이 비춰질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족쇄를 풀고 얼굴을 돌려서 현실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강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신교수는 배교수가 언급한 유동성에 대해서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이 우리의 유전자에 깊게 새겨진 것이며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어떠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 즉 유동성을 어떻게 이어나가는지에 고민하는 현대인들이 다시금 생각에 잠기게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코멘트를 남긴다.

배교수는 이에 대해 유대인 종교 철학자인 마르틴 부버(1878~1965)와 그의 저서인 ‘나와 너’를 언급한다. 이 책에서 마르틴 부버는 인격적인 참된 만남을 제시하고 있다. 마르틴 부버는 이 책에서 산업 혁명이후 인간은 다른 인간을 3인칭으로 인식하며 분석의 대상으로 인식한다며 이러한 관점을 깨고 인격체로서 대해야 우리의 현대 사회가 존속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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