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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ing/보고 남김

EBS 통찰 17: 자연과 인간의 통합적 이해 - 유교 조선의 지적 모험

by 그냥그렇듯이 2016.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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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

장회익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명예교수, 루이지애나대학교 대학원 물리학 박사)

김인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시대마다 새롭게 해석되온 유교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교 조선의 숨겨진 철학의 의미를 따라가보는 시간

음양오행과 성리학적 성찰을 통해 자연과 인간을 이야기하다.

김) 15세기의 제일 큰 업적은 바로 '한글'의 창제이다. 

"이달에 임금님께서 혼자서 손수 언문 스물여덟 낱자를 만드셨다." '세종실록 25년 12월 초'

본인은 한글을 만든 바탕을 '형식주의'라고 이야기하겠다. 나라의 기틀 마련->조직적 사고->한글의 조직적 발명으로 이어져왔다. 유교와 성리학의 기본 바탕은 2,3,4,8,64로 번져가는 형식주의이다. 2는 음양을 뜻한다. 음양의 바탕은 기(氣)이다. 기는 공기로 시작된다. 공기는 뭉치기도하고 흩어지기도해서 음과 양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발전된다. 음속에는 양이 있으며, 양속에는 음이 있기도 한다. 음양의 개념으로 들어가보면 상당히 복잡해진다. 서양철학으로보면 카를 융(Carl G. Jung)의 그림자론과 비슷할 것이다. 융은 '그림자론'에서 모든 사람에게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자아와 그림자의 관계는 빛과 그늘의 관계와 같으며 그림자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준다고 주장하였다. 서로 상대되는 것이 계속 주고받으며 움직인다. 그리고 둘이 있으면 그 가운데가 있으니 3은 천(天), 지(地), 인(人)이 탄생된다. 그리고 4는 사계절(춘하추동), 사방(동서남북)이 있다. 그다음은 5는 오행(목화토금수)이다. 이 중 음양오행은 유교 형식주의의 제일 중요한 바탕이다. 

훈민정음헤례본에서 설명한 한글의 형식주의는 이 음양오행에 입각하여있다.

1. 천지간의 진리는 음양과 오행이 있을뿐이다.

2. 만물은 음양과 오행의 작용으로 존재한다.

3. 만물의 한 가지인 사람의 음성에도 음양과 오행의 이치가 들어 있다.

말소리를 어떻게 음양오행으로 조직하고 글자로 표현하는가?가 훈민정음을 제작하는 사람들에게 큰 고민이였다. 세종은 중국의 음운 분류포 삼십육자모를 참고한 분류에다가 중국은 위의 음운 분류포에 따라서 한자를 껴넣었다. 하지만 세종은 발음 기호를 넣어 재창조했다. 이는 중국의 유교 형식주의를 세종이 한글을 창조함으로써 완성시켰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은 16세기 만물과 음양오행에 대한 깊은 탐구가 시작되었다.사상적 모색을 위한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 중 조선 성리학의 근본을 세우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사람이 퇴계 이황이다. 퇴계 이황은 성리학을 체계화하였고 율곡 이이와 함께 성리학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자리잡는다. 16세기 조선은 천재의 시대이다. 퇴계 이황 이야기를 잠시 다루겠다. 퇴계는 후배 유학자들과 주고받은 편지 22편을 엮은 서간집인 자성록(自省錄)을 집풀하였다. 이 책에서 퇴계 이황은 학문하는 방법, 학문의 자세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퇴계가 남원경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심기지환(心氣之患): 마음과 기운에 병이 들면 안된다.' 을 이야기한다.

正緣察理未透 揠苗助長 (정연찰리미투 알묘조장): 이치를 살필 때 투철하지는 못한 것

 苗助長(알묘조장): 곡식의 싹을 뽑아 올려 성장을 돕는다는 뜻으로 성공을 서두르다 도리어 해를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맹자] 공손추편에 나온다. 또한 퇴계 이황은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가장 해로운 것은 鑿空而强探(착공이강탐)이라 하였다.

鑿空而强探(착공이강탐): 헛된 것을 천착하고 억지로 탐구하는 것

저절로 깨닫을때까지 기다려야지 억지로 탐하지 말라는 것이다. 퇴계 이황의 철학은 성과 정이 어긋나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性)과 정(情) : 이성과 감정

기(氣)와 이(理) 

퇴계 이황 철학의 목적은 자기 교육이다. 감정이 이성에 어긋나지 않도록 스스로를 조종할 수 있는가? 경(敬)은 성과 정이 어긋나지 않도록 감정을 조절하는 훈련이다.

"지식이 많을수록 더욱 공경하는 자세를 가져야한다." -퇴계 이황

퇴계가 말하는 공부하는 방법은 사서오경의 내용을 완전히 자득하는 것이다. 열심히 읽다보면 활연관통(豁然貫通) :환하게 통하여 이치를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고 하였다. 책을 열심히 읽다가 자연스레 어떠한 것이 터지게 된다. 공부를 계속하게되면 자신에게 솔직하게되고 거짓말을 하지않게 된다. 선인의 책을 읽는 목적은 마음을 지키고 가다듬는 것이다. 퇴계에게 성(性)이(理), 도(道)란 우연(偶然)을 지배하는 본연(本然)이고 우유(偶有)를 통제하는 본유(本有)이다. 이는 현대인에게 받아들여지기 매우 어렵다. 기본적으로 성악설에 가깝기 때문이다. 퇴계 이황의 철학은 인간, 사회, 세계를 이상적인 수준에서 바라보았다.

17세기 조선은 야만인이라고 여긴 청에게 굴복한 후, 지식인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사상적 혼란기에 우암 송시열이 등장해 조선 성리학을 심화시키고 현실화해 조선의 문예 부흥을 이뤄냈다. 송시열은 주자의 학문과 가르침을 실천하고 명나라의 사상과 문화를 조선에서 계승해야 한다는 대명의리론과 조선중화사상을 주장하였다. 또한 반청을 위한 북벌론을 주장했다. 본인은 어찌보면 청을 정복하자는 무리한 주장에 철학적으로 의지를 강조하는 주의주의, 비극적 주의주의 (tragic volitionism)이 있다고 생각해봤다. 

송시열은 퇴계처럼 이성과 감성이 일치되어있다고 보지않고 '모든 것이 기의 움직임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송시열은 사단칠정이 모두 이(理)라고 보였다. 세상의 모든 곳에는 이()가 있으나 그곳에는 또다른 절대 진리가 있다. 이러한 절대 진리를 실현하는 방법은 바로 의지라고 보았다. 즉, 송시열에게 반청은 목숨을 걸고 청나라와 싸우겠다는 의자라고 ㅈ말했다. 송시열은 주자대전을 비교하여 지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천리는 고정불변이다. 절대적인 천리가 있다.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따라야한다." -우암 송시열

결국 세상은 두 가지, 강약사관은 Animalization: 금수를 만드는 것과 선악사관: 문명을 만드는 Civilization이 있다. 문화는 강약사관에 반대하는 선악사관에 근거해야한다고 말했다. 결국 조선이 약하더라도 선악사관을 따르는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以直報怨은 此公而無欲者 能之라 (이직보원은 차공이무욕자 능지라)

원수를 갚을때는 정직한 마음으로 해야한다. 정말 공정하고 사심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천리이나 수치와 굴욕을 무릅쓰고 섬기는 것은 인욕이다. 송시열의 반청철학은 17세기의 경제 파탄과 국력 붕괴 속에서 주체성을 지켜줬다.

18세기 조선은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했다. 또한, 문화 발전의 극치를 이룬 시기이다. 서민의 풍속도 발전하여 그림과 시가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 농업과 실학, 백성을 생각하는 연암 박지원이 등장하였다. 

"사방이 겨우 몇천리에 불과한 나라에서 국민의 살림살이가 이처럼 가난한 것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국내에 수레가 다니지 못한 까닭이라 하겠다." -박지원, 열하일기

박지원은 철학적인 문제보다 농업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송나라 사람 안정이 학교 규칙에 농전과 수리 과목을 설치한 것은 다름 아니라 실학을 소중하게 여긴 것이다." -박지원, 연암집

박지원에게 농사일을 아는 사람이 실학자이다. 박지원은 정조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지금 부화하고 배우지 못한 선비들에게 게으르고 무식한 백성들을 인도하게 하는 것은 

술 취한 사람에게 눈 먼 사람을 도와주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박지원은 과농소초(課農小抄)라는 농업 기술과 농업 정책에 대한 책을 썼다. 이 책의 목차는 1.때, 2.날씨, 3.흙, 4.연모, 5.밭갈이, 6.거름, 7.물, 8.씨앗, 9.심기, 10.김매기, 11.거두기, 12.소, 13.소유제한 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그 당시 겪을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다루었다. 박지원은 농사일의 길잡이로 첫 번째로, 국가의 간섭 철회. 둘째로, 농사의 시기를 잘 알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기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연암은 자신의 고을의 토지를 농민의 수로 나누어 토지 독점률을 계산하였다. 이후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로 전토와 호구를 계산해 배분량을 산출하고 균등한 분배(균전)나 평등한 분배(정전)보다 소유 상한의 제한(한전)의 현실적 이유를 설명하였다. 

"책이 아닌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박지원

19세기 조선은 세도정치가 지속되면서 정치기강이 문란해졌다. 또한, 백성을 향한 지방 관리의 횡포와 착취가 심해졌다. 이때 인본주의에 기반을 둔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가 떠오른다. 최제우는 조선 말기의 종교사상가로 민족 고유의 경천사상을 바탕으로 동학을 창시했다. 또한 [용담유사]와 [동경대전]을 지었다. 

원형이정(元亨利貞): 주역에서 말하는 건(乾)의 네가지 원리.

윤집궐중(允執厥中): 서경에 등장하는 표현으로 진실로 중심을 잡으라는 의미.

"참됨은 하늘의 길이고 참되려고 공들임은 사람의 길이다." -중용(中庸)

"참됨은 믿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유가의 기본 사상이다. 수운 최제우는 검결(劍訣)이라는 노랫말을 동학을 주제로 썼다. 이 노랫말에는 수운 최제우의 정치적 견해가 드러나있다.

시호(時乎) 이내 시호

부재래지(不再來之) 시호(時乎)로다


만세일지(萬歲一之) 장부(丈夫)로서

오만년지(五萬年之) 시호(時乎)로다


용천검(龍泉劍)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


무수장삼(舞袖長杉) 떨쳐입고

이 칼 저 칼 넌짓 들어


호호망망(浩浩茫茫) 넓은 천지

일신으로 빗겨 서서


칼노래 한 곡조를

시호시호 불러내니


용천검 날랜 칼은

일월을 희롱하고


게으른 무수장삼

우주에 덮여 있네


만고명장 어디있나

장부당전(丈夫當前) 무장사(舞壯士)라


좋을시구 이내 신명

이내 신명 좋을시구

칼을 가지고 휘두르면서 만년에 한번 나온 장수가 오만년만에 칼을 휘두르고 있다. 동양 사상에 중요한 것이 바로 현재이다. 게으른 무수장삼... 이 부분은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깨달음은 '장부당전 무장사라'이다. 올바른 사람 앞에서 힘센 사람이 나서지 못함을 뜻한다.

"아름답도다! 우리 도의 시행됨이여. 

붓에 의탁하여 글자를 이루면 남들은 또한 왕희자의 필적인가 의심하고, 

입을 열어 운자를 부르면 누가 나무꾼 앞에서 탄복하지 않겠는가?" -최제우 [수덕문]

나무꾼조차도 자기의 도를 따라가며 자기의 가치를 지키면 글도 잘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에 있었던 양반과 평민의 구별을 폐기하고 평등주의를 선언한 것이다.

億兆蒼生 句歸一體(억조창생 동귀일체)

양반과 평민이 다 같이 갈 수 있는 본질을 지켜야한다. -[도덕가]

수운 최제우는 평민이 군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이와 같이 조선의 유학은 시대에 맞춰 변화해왔다. 이와 마찬가지로 21세기의 유학도 새롭게 창조적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 

장회익 교수와 김인환 교수의 대담)

Q. 현대에 유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안창호 '준비론'은 무력투쟁을 중지하고 인재 육성 국민 교육 문화 활동과 독립 후를 대비해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겼다. => 현대 기술 철학으로 이어짐.

신채호의 '무투론'은 광복이 이뤄질 때까지 일본군에 대한 군사 공격을 끊임없이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겼다. => 현대 인권 사상으로 이어짐.

Q. 유학이 현대 기술 철학이나 인권 사상에 기여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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