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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ing/보고 남김

EBS 통찰 12: 독립적 주체

by 그냥그렇듯이 2016.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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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

최진석 교수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베이징대학교 대학원 도가철학 박사, 건명원 원장)

김대식 교수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교수, 독일 막스 플랑크 뇌과학연구소 뇌과학 박사, MIT Post Doc)

최진석 교수 이야기: 

<Q:독립적 주체는 어떻게 작동되는가?>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을 우리는 '피아니스트'라고 부른다. 이 '피아니스트'는 피아노가 가진 기능을 잘 구현하다가 더 이상 구현할 것이 없으면, 한 발자국 더 건너뛰게 된다. 그러면 이 '피아니스트'는 음악을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음악 이론'과 '음악 체계'를 구현하는 단계에 진입한다. 그리고 이 상태에 진입한 '피아니스트'는 '뮤지션'혹은 '음악가'로 불리운다. 이 '뮤지션' 혹은 '음악가'가 또 다시 그 분야에 끝을보면 그 다음으로 '인간'을 표현하는 사람, '문명'을 표현하는 사람, 즉, 예술가(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탁월성을 보여주는 사람)로 성장한다. 피아니스트 -> 음악가 -> 예술가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피아니스트->음악가 사이의 단계는 이미 있는 것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간극이 음악가 -> 예술가로 성장하는 단계와는 다르다. 음악가 -> 예술가로 성장하는 것은 없는 것을 가져와야하기 때문에 매우 큰 간극이 있다. 예술가는 고유성과 유일성을 가지며 가장 높은 곳에 존재하게 된다. 존재하지 않는 것, 없는 길을 열 때 발휘되는 능력이 바로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이 '상상력'과 '창의력'이 발휘되는 단계를 우리는 인문, 문화, 철학, 뇌과학적인 단계라고도 표현한다. 이 단계에서 삶과 시선이 같이 영위하게 된다. 피아니스트 -> 음악가 -> 예술가의 과정은 국가가 후진국 -> 중진국 -> 선진국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후진국과 중진국은 '선도력을 가진 선진국을 따라가는 단계'이다. 하지만 선진국은 존재하지 않는 길을 새롭게 여는 것이다. 고로 선진국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독자성'과 '창의성'을 가지는 것이다.

<Q: 상상력과 창의력은 어떻게 발휘되는가?>

이미 있는 길을 답습하는 단계에서는 '대답'을 하는 활동이 주로 일어난다. 없는 길을 여는 단계에서는 '질문'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해진다. 선진국은 질문이 풍부한 나라이며, 후진국과 중진국은 대답이 풍부한 나라이다. '대답'은 이미 있는 지식을 그대로 습득하여 누가 요구할 때 그대로 답하는 것이다. 이 때, 승부는 '대답'을 누가 더 빨리, 원형그대로 내뱉느냐에 달려있다. 때문에 '대답하는 사람'은 고유한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비독립적 주체로 존재하게 된다. 이에반해 독립적 주체는 질문을 한다. 질문이란 고유한 내면이 드러나는 것이다. 고유한 내면은 '궁금증''호기심'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궁금증'과 '호기심'은 매우 사적이며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한다. 즉, 인간은 질문할 때 비로소 독립적 주체로 존재하게 된다. 

즉, 독립적 주체는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많고 큰 호기심을 작동시키고 있다. 이 궁금증과 호기심이 작동되는 현상은 '질문'으로 나타나고, 이 질문이 해결되는 과정이 '창의적 활동'이며, 이 활동중에서 발휘되는 것이 상상력이다. 그리고 이를 해결함으로써 '창조'가 실현된다. 

"인간이 늙어간다는 건 젊었을 때 가졌던 빛나는 호기심이 사라지는 과정이다." <니체>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항상 예민하다. 항상 예민한 사람은 새로운 징조, 새로운 조짐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한다. 문명의 이동은 항상 조짐과 신호가 먼저 선행한다. 이 조짐과 신호는 새로 등장하는 것이기 땜누에 과거의 문법으로 본다면 이상하고 나쁜것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이 이상하고 나쁜것으로 보이는 것이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과거의 문법'을 가지는 사람은 이를 읽어낼 수 없다. 이는 오직 '궁금증'과 '호기심'으로만 찾아낼 수 있다.

<Q: 궁금증과 호기심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

한국 사회는 유독 큰 인재와 재난이 발생하였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등이다. 이는 '후진국형 재난'이라고 일컫어지는데 이러한 후진국형 재난의 원인을 많은 언론들이 다음의 세가지로 요약한다. 안전 불감증, 준비 소흘, 훈련 부족. 이 세가지 요소만 충족된다면 '후진국형 재난'을 막을 수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우리는 이 세가지 요소를 충족시킬 수 없는가? 이를 다르게 본다면, '안전', '훈련', '준비'는 우리가 현재 이루기에는 너무 높은 단계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안전', '훈련', '준비'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것, 아직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비하는 능력은 높은 능력을 요구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진국에서 '후진국형 재난'이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안전', '훈련', '준비'를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구체화된 세계에 익숙한 사람이며, 이를 해내는 사람은 구체적이고 현실화된 세계를 넘어서 '궁금증'과 '호기심'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나는 없는 길을 여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존재인가?', '나는 나인가?', '나는 독립적 주체인가?'는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네가 너인가?'

최진석 교수와 김대식 교수의 대담:

<Q: 우리에게는 왜 상상력과 창의력이 없을까?>

최: 수 많은 사람들이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자고 써붙여놓은다. 하지만 '창의력'은 발휘하는 것이아니라 발휘되는 것이다. 튀어나오는 것이다. 고로 이것은 인격적인 문제로 연결된다. 내면이 준비되어 있어야만 발휘되는 것이다. 우리가 오랜 시간동안 '창의력'을 외쳤지만 성공하지 못한 것은 아직 우리 사회에 창의력이 발휘될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부족한 것이다.

김: 한국 조직에서 창의적인 질문은 지탄받을 수 있다. 결국 궁금증과 호기심을 말하기는 편하지만 진정성을 얻기란 매우 쉽다.

최: 그것은 인격적인 준비가 필요한데, 이는 시스템적인 문제도 있는 것이다. 

...중략...

최: 질문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문에 반응하는 훈련도 필요하다. 학교에서도 토론 수업을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토론을 해보지 않은 선생이 토론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한국 사람들은 질문을 하기전에 먼저 붙이는 말이 있다. 이는 '이 질문이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겠는데요.'라는 것이다. 질문에 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자신의 고유한 내면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Q: 대한민국 사람들은 질문하기 힘든 환경 때문에 질문을 못하는 것인가?>

최: 개인적으로 한국은 호기심이 많이 약화된 상태다. 어렸을 때부터 정답만을 찾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 현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최: 동의한다. 문제해결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교육의 본질인데, 정답을 찾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응법을 발휘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장 먼저 문제를 찾아야한다. 즉, 호기심과 궁금증이 있어야한다.

..중략...

이: 한국 사회는 내면적 호기심이 없어지기보다는 이가 왜곡되어 외면적 호기심으로 발전하게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집 평수는 얼마인가?', '내가 무슨 차를 타는가?' 등의 질문은 글로벌 레벨에서는 그 누구도 관심갖지 않는 것이다.

최: 맞다. 독립된 주체가 되지 않으면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밖에없다. 그래서 나의 인생이 나에 의해서 확인되는 것이아니라 외부의 시선으로 확인되어야만 만족을 얻게 된다. 고로 궁극적인 만족을 얻기란 힘들다.

<Q: 대한민국에서 창의성은 어떻게 키워야하는가?>

최: 시스템적인 문제도 있지만, 우선 일상을 답답해해야하며 평범하지 않으려고 애써야 한다. 그리고 반복적인 행위(언어, 몸 모두)를 끊고 새로움을 찾아야한다. 그리고 항상 고양된 것, 고유함을 가지려고 노력해야한다. 시스템만을 탓하고 있으면 안된다. 자기가 스스로 이겨내야한다. 나는 아침마다 혼자 '나는 곧 죽는다.'라고 이야기한다. 자기가 자기만의 언어로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것. 내가 과연 진실로 나로 존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Q: 자기의 고유성만을 찾다 보면 이기적으로 되는 거 아닐까?>

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좀 이기적이라면 어떠한가? 그것이 비록 부정적인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이롭게 하는 이기주의에 집중해야만 한다. 이 세상에 살다가는 존재는 유일하게 '자기'밖에 없다. '살다 간다', '생명' 이것은 본인 스스로, 나밖에 느끼는 것이다. 

<Q: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은 남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거 아닌가?>

최: 반고흐, 빌게이츠, 스티브잡스 모두 자기만을 위해서 살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의 고유성을 발휘한 활동으로 인류 발전에 이바지한 것이라고 본다. '고유한 자기로 사는 것이 결국 이타적인 행동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이기주의는 악마적인 이기주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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