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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ing/보고 남김

EBS 통찰 10: 고전, 인간을 말하다. [오디세이아 2편]

by 그냥그렇듯이 2016.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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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 이태수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 오디세이아

강대진 교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겸임교수) -  일리아스


'일리아스': 용감한 영웅 아킬레우스

'오디세이아': 지략의 상징 오디세우스


이태수 교수 이야기:

<오디세우스 9권~12권>

서양문학사 최초 1인칭 서술.

오디세우스 자기 자신이 화자가 되어 제한된 정보 안에서 사건을 진술.


3인칭 신의 시점: 1인칭 화자 서술

객관적 사건 서술: 오디세우스 의식에 투영된 사건을 시인이 해석


호메로스는 독자에게 자신의 해석을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1인칭 시점을 활용함. 하지만 

1인칭 서술의 한계점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의미 해석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오히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오디세이아의 주제>

오디세이아는 신과 인간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주제임.


'오디세이아'에서는 신과 멀어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줌. 이러한 모습은

기원전 700년에 쓰인 헤시오도스의 '일과 나날'이라는 작품에서도 볼 수 있음.


<헤시오도스의 일과 나날 (Ergakai Hemerai)>


노동을 싫어하는 동생이 유력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부정한 재판으로 헤시오도스의 상속분까지 가로채려 하자 동생을 훈계할 목적으로 농경기술과 노동의 신성함을 서술했다.


그리스시인인 헤시오도스는 이 작품에서 인류의 역사를 황금시대, 은시대, 청동 시대, 영웅 시대, 철의 시대로 구분하였다. 그 중 철의 시대는 인간이 지배하는 시대로 시대가 바뀌어가면서 인간이 타락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불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구원은 오직 정의와 노동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대, 우리들의 충고를 언제나 기억하고 일하라, 페르세스, 고귀하게 태어난 이여. 그대를 굶주림이 혐오하도록 그대를 사랑하도록 고운 화관 둘러쓴 데메테르 고귀한 이가, 곡식으로 그대의 창고를 가득 채우도록. 굶주림은 실로 온전히 일하지 않는 자의 동반자의 것. 그에게 신들도 인간들도 화를 내는 법, 일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에게."


호메로스의 작품인 오디세우스에는 헤시오도스의 <일과 나날>과 비슷한 인간관이 스며들어 있다. 호메로스는 헤시오도스의 금 시대의 인간(신과 같은 삶)이 좋은 것만은 아님을 강조한다.


헤시오도스의 <일과 나날>은 신에 가까운 존재인 영웅들의 시대를 설정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C%EA%B3%BC_%EB%82%A0>


<영웅 수식어>

isotheos: 신과 같은

hemitheos: 반쯤 신인

antitheos: 신에 견줄만한

dios: 신적인


호메로스 작품에 등장하는 영웅은 그리스 신화의 마지막 세대 영웅이다. 이들을 끝으로 영웅 시대는 막을 내린다. <오디세우스>는 영웅적 활약상을 보여주는 맨 마지막 영웅이다. <오디세우스>는 영웅과 평범한 인간 경계상의 인물이다. 그의 여정을 보면 '영웅보다는 못난 인간에 가깝다.'라는 생각이 든다. 


<오디세우스>를 통해 '영웅의 삶을 동경해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통해서 금 인간의 시대, 영웅의 시대를 떠나 새로운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인간과 신이 거리를 둬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인간이 인간다운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여정: 키코네스가 사는 곳에서 출발


<키코네스 (Cicones)> : 고대 그리스 북부 트라키아(Thrakia) 지역에 살던 부족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던 오디세우스가 부하들과 함께 트라키아 남부 해안에 상륙하여 키코네스가 살던 곳을 점령한다. 현재의 마케도니아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오디세우스 일행은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고 자기 자신도 상처를 받는다. => 영웅의 현실. 그들은 배로 남하해서 그리스 반도의 최남단인 말레아 곶(Cape Malea)를 지나친다. 


<말레아 곶(Cape Malea)>: 크레타의 북쪽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말레아 반도의 끝. 이곳을 지나면서 거센 폭풍을 만나 항로를 이탈하게 된다. 폭풍이 끝나고 주위를 바라보자 이 세상이 아닌 전혀 이상한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이상한 연꽃을 먹고 산다." 


이후, 그들은 외눈박이 거인족 키클롭스가 사는 곳에 도달한다. 그 중 가장 힘이 센 거인인 폴리페모스와 만나게 된다. 폴리페모스를 만난 오디세우스는 동굴에 갇히고 만다. 술에 취한 폴리페모스가 잠에 떨어지자, 오디세우스는 쇠막대를 불에 달구어 거인의 눈을 찔렀다. 


폴리페모스는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귀향 중인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저주를 내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포세이돈의 저주로 오디세우스는 10년의 귀향길이 걸린다.


이후, 오디세우스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가 사는 섬에 도착한다.


<아이올로스(Aiolos)>


바람을 관장하는 신.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던 오디세우스가 아이올리아 섬에 표착하자 오디세우스에게 순풍과 함께 역풍이 담긴 자루를 내어준다. 귀향 도중 호기심을 못 이긴 오디세우스의 부하가 자루를 풀자 역풍이 휘몰아쳐서 배는 순식간에 그 섬으로 되돌아가 아이올로스의 노여움을 크게 샀다. 부하의 의심으로 일을 그르치고 만다. 이후, 오디세우스는 처음 자살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어찌어찌 마음을 잡고 다시 항해를 계속한다.


이번 항해에서 오디세우스는 식인 거인 라이스트뤼고네스가 사는 곳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대참변을 당한다. 오디세우스는 애당초 배 12척을 가지고 트로이아 전쟁에 참여했는데, 전쟁 후에도 12척의 배를 고스란히 유지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오디세우스가 타고 있떤 배 한 척의 인원을 제외하고 부하들이 모두 죽는다. 이 사건으로 매우 의기소침해졌지만, 오디세우스는 항해를 계속한다. 그리고 키르케가 살고 있는 곳에 도착한다.


<키르케(Circ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녀. 키르케가 살고 있는 궁전에는 돼지와 같은 가축 그리고 맹수들도 같이 있다. 그들은 키르케의 마법에 걸려 모습이 변한 인간들이다.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의 마법에 걸리지 않고 그녀를 제압하고 1년을 같이 산다. 그리고 부하들의 재촉으로 길을 다시 떠난다. 그리고 이윽고 하데스를 만나게 된다.


오디세우스는 하데스가 살고 있는 지하 세계에서 무서움을 맞보고, 아들을 기다리다가 저 세상으로 떠난 어머니를 만나기도 하고 테이레시아스의 영혼으로부터 자신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리고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아가멤놈, 아이아스, 아킬레우스를 만난다. =>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허망함을 깨닫게 된다. 이곳에서 아킬레우스는 유명한 말을 한다.


"죽음에 대해 나를 위로하려 들지 마시오. 영광스런 오디세우스여.

나는 이미 죽은 모든 사자들을 통치하느니 차라리 시골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가산도 많지 않은 다른 사람 밑에서 품팔이를 하고 싶소."


이 구절에서 영웅 세계에서 영웅들이 가지고 있는 미망이 깨진다. 하데스 이후, 오디세우스는 세이렌과 만나게 된다. 


<세이렌(Seire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요정으로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을 홀려 죽게 만든다.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유혹에 대비해 부하들에게 밀랍으로 귀마개를 하게하였고, 자신은 돛대에 몸을 묶어버린다. => 자기는 세이렌의 노래가 듣고싶었다. 이 후, 머리가 여러 개 달린 바다 괴물 스킬라가 사는곳을 지나가게 된다. 이곳에서 부하 몇명을 더 잃는다. 호메로스는 스킬라와 싸우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을 통해서 부질없는 영웅의 허세를 지적한다. 오디세우스는 허무하게 습격당하면서 무력감을 느끼게된다.


이 후, 태양신 히페리온이 키우는 소가 있는 곳에 머문다. 식량이 부족해진 부하들이 그 소를 잡아먹는다. => 신에게 벌을 받은 오디세우스는 난파를 당하고 겨우 살아남았다. 칼립소의 섬에 도착하여 7년을 살게 된다.


<오디세우스의 서사구조적 특징>

1. 폭력의 위험과 치명적인 유혹의 위험이 교차 반복된다. => 오디세우스는 모험을 통해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2. 이야기 길이에도 일정한 리듬이 존재한다. => 오디세우스와 신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오디세우스는 많은 낙원에 머물렀다. 오디세우스는 여정 도중 그 곳의 사람들이 곡식을 먹는지, 제사를 지내는지, 손님 접대의 도리를 아는지 부터 알아봤다. 

이는 오디세우스가 생각하는 인간의 표지는 '식사', '제사', '손님 접대'이기 때문이다. 


곡식을 먹음: 농사를 짓는 수고를 통해 먹거리를 얻는 삶을 살고 있음.

제사를 지냄: 노동 후 감사한 마음을 신께 표현함.

손님을 접대함: 윤리규범을 지킴


하지만 인간과 다른 삶을 사는 괴물은 감사의 마음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디세우스가 지나쳐온 '낙원'에는 노동이 없고 그 자체로 풍요로웠기에 감사의 마음이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도 없었다. 그리고 타자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은 자족의 상태였다. 때문에 낙원은 매우 폐쇠적인 공간이다. 헤시오도스가 이야기한 금 인간들이 살던 낙원을 관장하던 신은 제우스가 아닌 그의 아버지인 크로노스(Cronos) 이다. 


<크로노스(Cronos)>: 제우스의 아버지이다. 크로노스가 자식을 삼키는 것은 시간을 거스르려는 것이며 시간이 흐르면 있던 것이 없어지고 새로운 것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임을 뜻한다. 이를 그린 작품으로는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크로노스)'가 있다. 낙원에서는 생식이 죄가 되지 않는다!!


신에 가까워 보이는 영웅을 통해 영웅의 삶을 동경해서만은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디세우스가 거쳐온 곳 중에 온전히 영웅시대를 상징하는 곳은 없다. 영웅시대를 상징하는 것은 바로 오디세우스 자신이다. 오디세우스의 여정 중에 오디세우스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영웅적 요소와 계속 거리를 두게 된다. 그리고 출발할 때의 모습과는 다르게 변해간다.


영웅의 모습을 버리고 생존을 위해 이름을 버리는 오디세우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괴물에게 오디세우스는 Outis(Nobody)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자신의 이름을 생명과 같이 여기는 영웅과는 전혀 딴판이다. 이름을 지우는 행위는 불멸의 명성을 얻을 기회를 버리는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이름을 버림으로써 어떠한 이득을 얻었는가?


괴물은 자신의 눈을 찌른 오디세우스에게 화가나서 펄펄 뛰었다. 그리고 이 소리를 듣고 주위의 괴물들이 몰려와서 물었다. "뭐 때문에 그러느냐?" 그러자 눈이 찔린 괴물은 "Nobody가 나를 해쳤다!" 즉, "그 누구도 나를 해치지 않았다!" 라고 이야기 해버린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버렸기 때문에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망가던 오디세우스는 아직까지 영웅적인 부분이 남아있었고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디세우스가 네게 그런 일을 했노라."라고 큰소리 친다. 그러자 외눈박이 괴물은 그 이름을 듣고 자신의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오디세우스'를 향한 저주를 내려달라고 부탁한다.


오디세우스는 무공이 아니라 지모로 해결한다. 하지만 지모는 전형적인 영웅의 특기는 아니다. 오디세우스는 스스로 영웅임을 자처하는데 이것이 오디세우스의 약점이 된다. 세이렌 이야기에서 그 약점이 또 확인된다. 아직도 영웅임을 자처하고 싶은 오디세우스! 하지만 세이렌의 유혹을 막아낸 지모를 통해 오디세우스 스스로 영웅임을 포기한다. 


오디세우스는 고난의 여정을 통해서 '낙원'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 금 인간처럼 신에 아주 가깝게 사는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서 제사를 바칠뿐 그 세상을 넘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디세우스는 이것이 곡식을 먹는 철의 인간의 시대. 즉, 제우스의 시대를 사는 법도라고 이야기한다. 제우스의 권능은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와 형제인 포세이돈과는 다른 방식으로 발휘된다. 오디세우스는 인간적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 영웅적 삶을 포기한다.


영웅은 불멸의 명성을 통해 자신이 신에 가까운 존재임을 입증하려 하는데 오디세우스는 이러한 생각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다. <오디세이아>는 영웅서사시로 알려져있지만, 영웅의 삶을 찬양하기보다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오디세우스에게 남은 영웅적 모습은 모험을 통해 타자의 세계를 알려고 하는 용기, 귀향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다. 영웅 아킬레우스처럼 전쟁에 나가 죽는 것을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오디세우스의 모험이 가지는 의미 <출향>: 자족적 폐쇄성을 벗어남.<귀향>: 자신의 정체성 확대 및 변화시킴.자신을 확대하고 모르는 것을 깨닫고 살다가 죽으면 그 자체로 의미있는 삶이다. 출향과 귀향의 변증법적 교차가 바로 인간의 삶이다.


이태수 교수와 강대진 교수의 대담:


Q: 오디세우스의 모험 중 환상의 세계가 가지는 의미는?

<로토스 먹는 사람들>: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중 오디세우스가 도착한 곳. 환각 상태를 일으키는 로토스를 먹으면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잊게 된다. 


<로토스를 먹는 사람들 일화가 가지는 의미> 행복에 관한 이야기, 행복이란 무엇일까? =>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은 행복을 가볍게 여기는 생각. => 달성하기 쉬운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술을 잔뜩 마시거나 약에 취하거나 하는 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환각에 의한 행복이다! 진정한 행복은 현실을 잊고는 얻을 수 없다. 암혹한 현실 속에서 얻은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 초반에 나타는 이 일화는 독자에게 행복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Q: 오디세우스가 리더로서 가진 문제점은 무엇인가?

오디세우스의 치명적인 단점은 자신의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 => '소통의 부재'는 리더로서의 큰 단점이다. 하지만 호메로스는 부족함이 있는 오디세우스를 통해 진정한 리더의 자질을 이야기하려 한다.


Q: 오디세우스는 귀향 의지가 있는 것인가?

영웅을 미화하지 않는 '오디세우스'. 고대 그리스 문학작품은 영웅의 부족함을 보여준다. 그리스 인들은 영웅을 통하여 인간의 허약함을 보여주는데 사용하였다. 문학작품의 의의가 영웅 숭배에 두지 않았다. 풀르타크의 '영웅전' => 영웅이 아닌 유명한 사람들. 이 이야기도 전형적인 위인전과 다르다. 훌륭한 사람들이 나와서 잘못한 이야기를 모두 기록하였다.


Q: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작품 성격상의 차이?

각 작품의 서시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일리아스>: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운명을 노래

<오디세이아>: 인간의 생존과 귀환, 영웅의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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